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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최초로 우주에 보내졌던 강아지! 라이카 🐶

by Cygnus2004 2023. 4. 19.

냉전이 한창이던 1950년대 후반,

미국과 소련의 치열한 우주 경쟁과정에서 최초로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나간 생명체는 한 마리의 떠돌이 강아지였습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탐사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이 강아지의 용감함으로 인해 얻어진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용감함이라는 단어로 애써 포장했지만, 진실은 인간을 대신한 희생이었다는 것을 감출 수 없을 것입니다.

 

1957년 10월 4일, 인류의 역사에 큰 획이 그어집니다.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것입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주목된 이 사건은 최고의 과학기술과 군사력을 자랑하던 패권국 미국의 자존심에 크나큰 스크래치를 남기게 됩니다. 실로 대단한 성공의 고무된 소련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국을 향한 두 번째 한방을 준비합니다.

바로 인간을 우주로 보내는 것을 말이죠. 하지만 무작정 인간을 우주로 보내기엔, 우주에 대한 정보와 그에 따른 기술적 성과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우선, 우주공간이 생명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인간을 대신하여 연구를 수행할 생명체가 전제되어야 했습니다. 우주 진입을 위해서는 치명적인 방사능과 살을 태우는 고온, 무중력상태, 거친 진동 등의 악조건을 견딜 수 있어야 했는데, 이러한 악조건에 사람을 대신할 생명체로 개를 선정하게 됩니다.

개가 다루기 쉽고, 인내심이 많아, 우주비행에 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나아가 순종이나 가정에서 기른 애완견보다는 길거리를 떠도는 잡종견이 거 친환경에서의 생존 확률이 높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이런 떠돌이 개들 중에서도 암컷을 주로 훈련시켰는데요. 앉아서 볼일을 보기에 수컷보다 더 좁은 공간에서도 지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련의 과학자들이 모스크바 시내에서 데려온 라이카 역시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참고로 라이카는 우리말로 치면 바둑이쯤 된다고 합니다.

라이카는 알비나, 무슈카로 불리는 다른 개들과 함께 우주견으로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중력가속도훈련을 비롯하여 캡슐 안에서 음식을 먹는 훈련, 좁은 공간에서 오래 견디는 훈련, 앉은 자세로 소변을 보고 균형을 잡는 훈련 등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위성의 작은 크기의 적응시키기 위해 20일에 걸쳐 점점 더 작은 우리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비좁은 감금생활로 인해 배뇨와 배변이 멈추고 심리적 불안을 느끼던 강아지들에게 약물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반복된 훈련만이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두 마리의 개들을 제치고 우주견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라이카가 매우 영리했고, 연구원들을 잘 따랐으며 침착하고 온순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라이카는 위성발사 9일 전에 우주견으로 선정되었으며 발사 3일 전부터 위성에서 대기를 해야 했습니다. 차가운 금속 우주선에 갇힌 라이카에게 사람들이 해준 것은 버스를 통해 더운 바람을 불어주는 것뿐이었습니다.

1957년 11월 3일,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 우주기지에서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는 라이카를 싣고 우주로 떠나게 됩니다. 무게 508kg의 작은 캡슐에는 태양광선과 우주선의 온도, 압력을 체크하는 간단한 기기들과 두 개의 라디오 송신기 그리고 얼마 간의 음식과 함께 라이카가 앉아 있었습니다. 스푸트니크 2호는 성공적으로 지구 궤도에 진입했고, 라이카는 사회주의 인민의 영웅으로 선전되었습니다. 라이카는 미국보다 앞선 소련의 우주과학 기술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습니다. 전 세계는 소련이 거둔 우주여행의 성공에 놀랐고 들떴습니다.

1958년 소련에서 최초로 생산된 필터 담배에는 라이카의 그림이 붙었고, 루마니아, 알바니아, 폴란드, 북한 등에서는 기념우표가 발행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과학기술은 우주탐사를 이제 막 시작한 걸음마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우주에 나간 뒤 다시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기술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라이카는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라이카의 임무는 우주 환경이 생명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정보를 지구로 전송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소련은 라이카는 충분히 준비해 둔 물과 먹이를 먹고 일주일간 살아있을 것이라며 먹을 것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독약 주사를 통해 안락사되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발사 6일 프라이카가 산소 부족으로 숨졌다고 발표합니다. 이후, 스푸트니크 2호는 발사 5달 후인 1958년 4월 14일, 바베이도스 상공에서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라이카의 시신과 함께 공중 분해됩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일까요. 지난 2002년 10월 ,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국제 우주항공회의에서 스푸트니크 2호 계획에 참여한 소련의 과학자 Dimitri Malashenko가 양심고백을 하게 되는데요. 드미트리는 라이카에 부착되어 있던 센서 자료를 공개하며, 라이카가 발사 후 불과 수시간만에 죽었다고 밝힙니다. 라이카가 탄 스푸트니크 2호는 노즈콘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 온도제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외부의 손상이 생겨 내부 온도가 40도까지 증가하여 더위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 박동수가 3배 이상 치솟았으며, 약 7시간 뒤 에는 생명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분명히 소련 과학자들은 볼셰비키 혁명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시간에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해야 한다는 강한 정치적 압력 때문에 생명유지 시스템을 완성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나타냈고, 라이카를 기리는 추모곡(Sana - Space dog)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네이버 웹툰에서 유리아작가가 라이카를 의인화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러시아 모스크바에선 반세기가 넘게 걸렸지만 라이카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설치됩니다. 라이카는 비록 생활할 수 없었지만, 스푸트니크 2호 실험을 통해 지구의 생명체가 지구 궤도에 진입하는 과정과 무중력 상태에서 견딜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무중력상태에서의 생명체가 보이는 반응에 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라이카의 죽음과 이를 통해 얻어진 연구자료들은 이후 1961년, 유리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공간에 나가고, 1969년 달 탐사가 이뤄지는 모든 과정에 밑바탕이 됐습니다. 라이카의 실험 과정은 우주 공간에서 생물체의 생존 여부와 적응 가능성이란 중대한 과정이었으며 라이카가 무중력 상태에서 5시간을 견디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유인우주선계획도 세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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