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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10월 24일 : 튀코 브라헤 사망
1546년 덴마크에서 위대한 천문학자가 태어납니다. 그 이름은 바로 튀코 브라헤(Tycho Brahe)인데요.
튀코 브라헤는 30년 동안 1,000개가 넘는 별과 행성의 운동을 관측해 기록을 남긴 위대한 천문학자입니다.
1572년, 최초로 초신성(超新星)을 발견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Credit: X-ray: NASA/CXC/SAO; Infrared: NASA/JPL-Caltech; Optical: MPIA, Calar Alto, O. Krause et al.
시력이 무척 뛰어났다고 알려진 그는 망원경의 도움 없이 맨 눈으로 밤하늘을 관측한 천문학자였습니다.
(브라헤 사후, 1608년에야 망원경이 발명됨)
덴마크의 왕이었던 프레데리크 2세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덴마크과 스웨덴 사이 해협에 있는 벤 섬을 통째로 하사했다. 브라헤는 그곳에 우라니보르크를 세웠다.)
당대 최고 수준의 천문관측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던 브라헤였습니다. 하지만 프레데리크 2세 후임으로 크리스타인 4세가 즉위하자 지원은 대폭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벤 섬을 떠나 신성로마제국 치하의 프라하로 향하게 됩니다.
천문관측에서는 천재적인 능력을 갖췄지만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여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은 부족했던 브라헤는 1600년 독일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를 채용하여 그때까지 자신이 모은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정리하는 일을 맡기게 됩니다.
사실 브라헤와 케플러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브라헤의 입장에서는 평생 모은 데이터를 선뜻 모르는 사람에게 모두 넘겨줄 수 없었습니다.(그때 케플러의 나이는 28세) 케플러의 능력도 확인해야 했지만, 인간적인 신뢰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반면, 케플러의 입장에서도 답답하기는 매 한 가지였는데요.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을 맡긴다더니 정작 중요하고 핵심적인 자료는 보여주지 않아 실망감이 적지 않았습니다.
행운일지 불행일지, 이 둘의 애매하고 불편한 사제관계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불과 일 년 후인, 1601년 브라헤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방광파열) 우여곡절 끝에 브라헤의 자료를 온전히 넘겨받은 케플러는 특히 화성에 주력했습니다. 화성의 정확한 공전궤도를 알아내기 위해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화성의 전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케플러는 철저한 플라톤주의자(플라톤에 따르면 행성은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 였기에 행성의 궤도가 원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 전제하에 브라헤가 남긴 데이터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계산한 결과 약 8분 각도(0.133333)의 오차가 생겼습니다. (1분 각도는 1도 각도의 1/60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 정도의 오차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브라헤와 케플러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브라헤의 관측 결과를 의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결과와 상식에 부합되지 않으면 실험과정에서 잘못된 것이 없는지부터 살피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 하지만, 케플러는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케플러는 스승의 관측 데이터를 결코 의심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원 궤도에 대한 자신의 오랜 신념을 포기합니다. 수년에 걸쳐서 수십 번의 계산으로 그가 내린 결론은 '타원' 이였습니다. 브라헤 사후 8년이 지난 1609년, [신천문학]에서 케플러는 "행성은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를 그리면서 공전한다."라고 밝힙니다.(케플러의 1법칙) 이로서 케플러는 우주의 법칙 중 한 가지를 자신의 이름으로 새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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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년 8월 6일 : 화성 극지방의 극관 발견
2005년 1월 14일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 인류 최초의 탐사선이 착륙했습니다. 이 탐사선의 이름은 350년 전 타이탄을 최초로 발견한 네덜란드의 과학자 하위헌스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는 갈릴레오의 망원경보다 더 뛰어난 망원경을 제작하여,
1655년 3월 25일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발견합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최초로, 토성에 희미한 테두리가 있었음을 발견한 후,
하위언스가 그것이 토성의 고리임을 밝혀냅니다.
더 나아가 1656년에는 토성의 고리가 모래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결론 내립니다.
1659년 11월에는 화성의 시르티스 메이저 평원(Syrtis Major)의 개략적인 지도를 고안하고, 이를 기초로 화성의 자전 주기를 계산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계산된 화성의 자전 주기와 거의 비슷한 결과값)
1672년 8월, 하위헌스는 화성의 밝은 점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렸는데, 그것은 나중에 화성의 극관(Polar ice cap)으로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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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8월 12일, 8월 18일 : 데이모스, 포보스 발견
갈릴레오가 목성에서 위성을 발견한 이후, 화성에도 위성이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제기됩니다. 이에 수많은 천문학자들이 수백 년 동안 화성을 관측해 왔지만 언제나 화성에 달이 없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일랜드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1726년 [걸리버 여행기] 3부 <라퓨타로의 항해>편에서 화성에 두개의 달이 있다고 언급하는데요. 작품 속 라퓨타의 천문학자들은 화성을 도는 위성 두 개를 발견했으며, 두 위성은 각각 화성 지름의 3배, 5배 거리에서 행성을 각각 10시간, 21.5시간에 1회 공전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참고로 포보스와 데이모스의 실제 공전궤도 거리는 각각 화성 직경의 1.4배, 3.5배이며 공전 주기는 각각 7.66시간, 30.35시간입니다.
스위프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되는 프랑스의 볼테르 역시 1752년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을 다루는 소설 [미크로메가스] 에서 화성의 두 위성을 언급합니다.
스위프트가 소설을 발표한지 150여 년이 지난 1877년, 화성과 지구가 근접했던 그 해에. 미국의 천문학자 아사프 홀(Asaph Hall)이 마침내 화성의 위성을 발견합니다. 그는 8월 12일에 데이모스를 발견했고, 6일 후인 18일에 포보스를 발견합니다.
두 위성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의 두 아들의 이름인데요. 데이모스는 두려움, 포보스는 공황을 뜻합니다. 아버지가 전쟁의 신이니 부전자전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 같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 포보스는 화성에 충돌할 것이고, 데이모스는 화성의 궤도를 벗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Giovanni Schiaparelli)는 망원경으로 화성을 관측하고 카날리(이탈리아어로 채널을 의미)라고 명명한 선형 구조물을 발견합니다.
영어로 '운하'로 잘못 번역된 이 카날리에 대한 대중의 상상력은 폭발했고 사람들은 붉은 행성의 물웅덩이 주변에 외계인이 모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1965년 7월 15일 마리너 4호가 화성에 도착하면서 화성의 운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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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4월 12일: 화성의 대기에서 물 발견
1963년 4월 과학자들은 분광학 분석을 통해 화성의 대기에서 물을 발견했습니다. 화성의 대기에 물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수세기 전에 발견된 극지방의 극관으로 인해 오랫동안 기대를 모았는데요. 현재까지 밝혀진 화성의 대기는 건조한 사막 위의 공기보다 훨씬 적은 양의 물만 존재합니다. 화성의 대기는 매우 얇고 거의 전적으로 이산화탄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화성에서 생명체가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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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7월 15일: 마리너 4호
미국의 초기 우주 프로그램의 큰 성공 중 하나인 마리너 4호 탐사선은 1965년 7월 15일 화성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여 우주에서 다른 행성의 사진을 최초로 촬영했습니다. 많은 관심을 모았던 화성에는 물도, 운하도, 외계인도 없었습니다. 이 탐사선은 향후 화성 표면에서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핵심 정보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계획된 8개월의 임무보다 훨씬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마리너 4호 미션의 총 비용은 8,320만 달러로 추산됩니다.
TOP #5
1971년 11월 14일: 마리너 9호
1971년 11월 14일, 마리너 9호는 화성 궤도에 진입하면서 행성 궤도를 도는 최초의 우주선이 되었습니다. 화성에 도착한 마리너 9호를 맞이한 것은 화성 전체에 불어 닥친 먼지 폭풍이었습니다. 1972년 1월 2일 먼지 폭풍이 가라앉자, 마리너 9호는 장엄한 화성의 모습을 전송하기 시작했습니다. 4,000km 길이의 협곡은 이 선구적인 탐사선 마리너 9호를 기리기 위해 '발레스 마리네리스 협곡'으로 명명되었습니다. 거의 1년 동안 궤도를 돌면서 마리너 9호는 7,329장의 화성 사진을 촬영하고 화성 표면의 약 85%를 이미지화했습니다. 태양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올림푸스 산을 식별한 것도 마리너 9호입니다.
TOP #4
1976년 7월 20일: 바이킹 1호, 접촉 성공
바이킹 1호는 화성 표면에 착륙한 최초의 미국 우주선입니다. 바이킹 1호와 이후 쌍둥이인 바이킹 2호는 90일 동안만 계획된 임무였음에도 불구하고 6년 동안 이미지와 기상 데이터를 전송하고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과학자들은 화성에 다양한 종류의 암석이 있으며, 아마도 다른 지점에서 생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화성에는 계절이 있고 밤에는 잔잔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지구인들은 처음으로 화성의 바위가 많은 땅을 밟고 격렬한 바람을 느끼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TOP #3
1996년 8월 7일 : 앨런 구릉 84001(Allan Hills 84001, ALH84001)
애런 구릉 840001은 1984년 남극 앨런 구릉에서 발견된 화성에서 온 운석입니다. 1996년 8월 7일, 이 운석에서 화성의 박테리아 화석이 발견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이 발표로 인해 많은 팡파르와 공개 토론,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운석과 그 내용물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 결과, 이 '화석'은 생명체의 잔해가 아니라 자연적인 과정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발견은 외계 생명체를 발견한다면 우리가 외계 생명체를 알아볼 수 있을지, 그리고 모든 질문의 근원인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습니다.
https://youtu.be/pHhZQWAtWyQ
TOP #2
1997년 7월 4일:마스 패스파인더,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
궤도와 착륙선을 통해 화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1997년 7월 4일까지 화성 표면을 밟아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날 화성 패스파인더(Mars Pathfinder)가 착륙하여 화성을 순항한 최초의 물체인 소형 로봇 로버 소저너(Sojourner)를 발사했습니다. 소저너는 7일 동안 작동하도록 설계되었지만 결국 그보다 12배나 긴 기간 동안 화성의 바람과 날씨에 대한 이미지와 데이터를 전송하고 토양에 대한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패스파인더 미션이 천문학적으로(말장난으로 의도한) 비용이 많이 드는 바이킹 미션보다 착륙선이 더 경제적일 수 있음을 증명하고 이후 수십 년 동안 미래의 탐사선을 위한 길을 닦았다는 점입니다.
TOP #1
2015년 9월 28일: 화성에서 액체 상태의 물을 발견했다?
2015년 9월 28일, NASA 과학자들은 화성 정찰 궤도선(Mars Reconnaissance Orbite)이 촬영한 스펙트럼에서 화성 표면에 액체 상태의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 또 다른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물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그 출처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었습니다.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물일까요, 아니면 공기 중에서 응축된 물일까요? 화성 유인 탐사에 대한 아이디어가 대중의 의식과 대중 매체에 떠돌고 있는 가운데, 어쩌면 화성에 최초로 탐사선을 띄우는 사람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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